사라진 소녀들 도서 리뷰 및 후기

사라진 소녀들 도서 리뷰 및 후기

역시 여름은 스릴과 긴장감이 넘치는 장르 소설의 계절인가? 비(雨)로 시작해서 비로 끝나버린 올해 여름 – 이 감상문을 쓴 시점이 작년 8월이니 여기서 올해는 2011년을, 뒤이어 나올 작년은 2010년을 말한다 – , 더위가 작년만 못해 더위라면 쥐약인 나로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위를 잊게 할 만한 멋진 “추리”, “스릴러”, “공포” 등 장르 소설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이런 책들을 무기 삼아 더위와 한번 “맞장(?)” 떠 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아직 한낮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가을 선선한 바람을 느껴볼 수 있는 요즈음, 올 여름 장르소설 출간 붐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스릴러 소설 한권을 만났다. 독일 심리 스릴러 소설계의 신동으로 평가받는다는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사라진 소녀들(원제 Blinder Instinkt / 뿔(웅진문학에디션)/2011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빨간 머리에 흰색 여름 원피스를 입은 한 소녀가 다리를 하늘로 뻗어 무중력 상태를 만끽하며 그네를 타고 있었다. 어지러워지자 그네가 저절로 멈출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소녀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음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의 존재를 느낄 수 가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외딴 곳에 위치해서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집, 부모님은 주무시고 오빠는 외출 중이라 혼자서 그네 놀이를 하던 소녀는 집을 향해 뛰려 하지만 앞 못 보는 지라 집까지 가는 너무 멀고 울퉁불퉁한 길을 넘어지지 않고 뛰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공포감에 휩싸인다. 소녀는 소리 지르려 했지만 커다란 손이 얼굴을 덮쳐 입과 콧구멍까지 틀어막고, 강한 팔이 뒤에서 소녀의 가슴팍을 껴안은 채 뒤로 끌고 간다. 소녀는 발버둥을 쳐 보지만 오히려 그네 나무판자에 이마를 맞아 피를 흘리고, 낯선 존재는 발버둥치는 소녀 위에 올라타 뒷머리를 낙엽이 쌓인 땅에 얼굴을 눌러 버린다. 그렇게 시각 장애인 소녀 “지나”는 실종되고 만다.

그로부터 10년 후, 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보호 시설인 “헬레넨슈티프트”에서 살고 있던 10세의 시각 장애인 소녀 “사라”가 자신의 방에서 깜쪽같이 사라지는 실종 사고가 발생한다. 수사를 맡은 여형사 “프란치스카 고플로프”는 원장에게 최근 몇 년간 시설을 드나든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부탁하고, 과거 유사 사건이 있는지 검색하던 중 10년 전 지금과 똑같은, 즉 10세의 시각 장애에 빨간 머리 소녀 “지나”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음을 알아내고 그녀의 오빠이자 유럽 복싱 헤비급 챔피언인 “막스 웅게마흐”를 찾아간다. 아직도 동생의 실종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는 막스는 프란치스카에게 그 당시 일을 털어 놓게 되고, 프란치스카는 괴로워하는 막스에게서 묘한 연정을 느끼게 된다. 원장의 리스트 중 몇 년 전 소아 성폭행 전과가 있었던 용의자를 발견하게 된 프란치스카는 택시 운전사를 하고 있는 그의 알리바이를 다그치지만 별다른 용의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데, 동생의 실종을 다시 조사하러 나선 막스는 그 용의자의 집을 찾아가 무참히 폭행하는 사고를 저지른다. 그 사고는 프란치스카에 의해 가까스로 수습이 되고, 동생이 실종되던 정황을 계속 나누던 둘은 그 당시 지나의 간청에 못이겨 집 주변 강가에서 지나가 옷을 벗고 물놀이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지켜본 주변 낚시꾼들 중에서 범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전개한다. 프란치스카는 사라가 사라진 시설에 있던 수족관을 관리하던 남자의 가게로 향하고, 막스는 동생 실종 후 뛰쳐나온 옛 집을 찾아가 아버지께 당시 그 강가에서 자주 낚시하던 사람들에 대해 묻는다. 과연 10년 전, 그리고 10년 후 현재 시점에 발생한 두 시각 장애인 소녀 납치 사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리고 범인은 잡힐 수 있을까?

일정 주기로 발생하는 사이코 패스에 의한 납치나 혹은 연쇄살인, 이 책에서는 시각 장애인 소녀라는 특이한 대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낯설지 않은 소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흔한” 소재를 작가는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이야기로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의 모티브를 어느 날 차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게 된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과 그 뒤를 따라 걷는 일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의 모습에서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지 남자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길 안내를 받던 여자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아이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만약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생각이 든 작가는 아이들과의 축구 시합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동생을 방치한 채 자리를 비웠다가 동생이 납치되자 10년 동안을 자책하며 살아온 “막스” 남매를 창조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 10년 후 동일범에 의한 같은 유형의 실종 사건이 일어났다면 과연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이야기를 구성해낸 것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막스의 동생 “지나”의 실종 장면을 보여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만 사실 중반까지는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이런 류의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들 특유의 설정, 즉 몇 몇 단서로 사건의 용의자를 제시하지만 결국 그는 범인이 아님이 밝혀지고 곧이어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하여 수사의 이목이 그리로 집중되는 설정을 답습하는 장면에서는 여느 소설과 차이가 없는 그런 설정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그냥 지나쳐버릴 만도 한 막스의 증언에서 뭔가 이질적인 감을 느낀 프란치스카가 또 다른 용의자로 여겨지는 남자의 가게에 방문했다가 그만 함정에 빠져 독거미들의 습격을 받아 생사의 기로에 서는 위험에 처하고, 막스 또한 의절(義絶)하다시피 한 아버지에게서 동생이 실종되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범인의 은신처로 향하는 장면부터는 긴박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결말에 이르기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버리고, 결말 부문에서의 반전 – 작가는 이 반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 또한 여느 스릴러 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특히 시각이 아닌 촉각, 청각 등 다른 오감에 의해 위험을 감지하고 두려워하는 소녀의 심리와 지하 폐쇄된 공간에 갇혀 독거미 떼들의 공격을 받는 치명적인 위기에 처하는 프란치스카의 심리를 머릿 속에 그 장면이 절로 연상될 정도 – 번역가 말 대로 다 읽고 나서도 다리에 뭔가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느낌이 들게 한다 – 로 세밀하고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이 올 여름 출간된 추리, 스릴러 소설들 중에서 최고라고 할 수 는 없겠지만 긴장감과 재미가 탁월한 멋진 스릴러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독일식 이름과 지명에 낯설게 느낄 수 도 있겠지만 익숙한 영미 스릴러 소설과는 다른 색다른 스릴과 재미를 맛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늦더위를 이 책으로 이겨내 보는 것도 괜찮은 여름 무더위와의 작별 의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 첫머리에서 던진 질문, “여름은 스릴과 긴장감이 넘치는 장르 소설의 계절인가?” 에 “장르 소설이 제격이다”라며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면서 그런 “여름”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음을 고마워하고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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