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도서 리뷰 및 후기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도서 리뷰 및 후기

아마도 인간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일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과연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오늘날 사회생물학으로 부터 참 많은 공격을 받고 있지만 이 리뷰에서 정작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 말에 심어져 있는 또 다른 뉘앙스, 그러니까 마치 우리 인간은 그 무엇에도 좌우되지 않고 자유로이 생각을 할 줄 안다는, 달리 말해, 특히 기독교적 용어로는 바로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을 문제삼고자 한다.

  우리의 흔한 상식으로는 우리는 온전히 우리의 자유의지로 생각하며 그 생각에 있어서는 그 무엇의 간섭도 지배도 받지 않는다고 여긴다. 남의 생각을 자기 뜻대로 지배하는 걸 특히 세뇌라고 하는데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이미 세뇌되었다고 여기는 이는 없을 줄로 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입된 생각에 따라,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다만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책’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엘든 테일러이다. 그는 최면과 잠재소통 분야의 전문가이다. 외부의 주입으로 생각에 간섭하고 지배하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는 최면의 전문가라는 그의 이력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이 그는 얼마든지 타인에 의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생각이 주입되거나 통제될 수 있으며 사실 우리가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하는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닭장의 닭 처럼 우리는 모두 복사되는 것이다. 행동과학자들은 동물이 집단에서 수용되기 위해 동물을 모방하는 과정을 ‘복사’라고 명명했다. 닭장에서 자란 독수리나 오리 새끼는 닭처럼 행동한다.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 처럼 백조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요지는 간단하다. 인간은 제한된 사고, 더 나아가 훈련된 사고를 하도록 사회화 된다. 실로, 이 과정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돼 우리 안에는 어떤 맹목성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무지는 때때로 인지 이론가들이 말하는 ‘맥락에 갇힌 사고’로 쉽게 설명된다.(p.113)

  이 말은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면서 부터 더 이상 고유의 자신은 없어지고 사회라는 맥락에서 형성된 존재만이 남는다라고 했던 라깡의 말을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더 이상 내 순수 자의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고 누군가를 모방하기 위해 혹은 이미 외부로 부터 조건지어진 그 위에서 그 외부가 이미 내 안에 설정한 매커니즘에 따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임의로 항로를 설정하여 생각을 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 말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생각의 항로가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내가 비행기를 몰고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안에 미리 탑재되어 있던 운항 컴퓨터가 몰고 간 것이며 그것을 다만 내가 몰았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거다. 바로 이것이 ‘맥락에 갇힌 사고’의 의미이기도 한데 그 말을 쉽게 하자면 ‘편견’ 정도가 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그 생각의 폭을 가장 많이 제한하는 것이 바로 편견일 것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편견, 더러운 자에 대한 편견 그리고 인종에 대한 편견 등 그 수많은 편견들은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의에 의한 생산물은 아니다. 사실 그 모든 대부분의 편견들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외부로 부터 주입된 것들이다. 특히나 인종에 대한 편견이 그렇다. 예전에 EBS에서 해 줬던 다큐 하나가 생각난다. 우리가 백인을 대할 때와 동남아시아인들을 대할 때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다큐였다. 대표적으로 백인이 영어로 길을 물으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동남아시아인들이 물으면 아예 상대를 하지 않거나 한국말도 못하면서 왜 여기를 왔냐 하고 면박주기 일쑤였다. 특별히 동남아시아인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 까닭이 없는데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그런 반응을 보인 걸 보면 분명 거기에는 편견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개인들이 모두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해 안좋은 경험을 가진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자기의 경험 때문이 아니라 어느새 사회가 가진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개인이 내재화되어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렇게 어느새 사고가 무엇에 의해 닫혀버리는 것. 그것이 편견이고 그것이 바로 맥락에 갇힌 사고다.

  저자 앨런 테일러가 이러한 복사, 편견을 강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알게 모르게 사회로 부터 세뇌당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초대형 쓰레기통과 같아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집어 넣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집어넣는 주체는 대부분 우리가 아닌 남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특히 개인의 욕망을 창출시키고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통제하는 미디어들이 맡고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광고’라고 말한다. 그는 아예 미국의 한 광고인 양성소(이 양성소는 전문 광고인을 육성하는 곳으로 그 모든 테크닉들은 모두 비밀리에 이루어지므로 사실 거기서 사용되는 교재를 외부에서 보기란 어렵다고 한다.)에서 실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자료를 입수하여 보여주는데 거기서 우리는 광고라는 것이 보이는 것과 다르게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뜻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지 똑똑히 보게 된다. 그 뒤 그는 단적으로이렇게 말한다. ‘광고란 잠재의식 조종 기술이다’라고.

  사람은 자신이 눈으로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사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못 느끼는 이유는 보기는 하지만 의식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재의식은 그 모든 걸 다 보고 있다. 그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코카콜라 회사가 한 극장에서 실험까지 했었다. 그러니까 영화 필름에다가 코카콜라를 찍은 필름을 사이사이 끼워 넣는다. 하지만 눈으로는 인지하지 못하도록 아주 찰라에 지나가게끔 끼워넣는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 도중 코카콜라를 전혀 보지 못한다. 그 어떤 방해도 없이 편안하게 관람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영화가 끝난 뒤 대부분의 관객이 코카콜라가 마시고 싶었다고 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즉 그들의 눈은 코카콜라를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잠재의식은 영화 도중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코카콜라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게 세뇌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잠재의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나왔지만 전혀 코카콜라를 보지 못한 관객들 처럼 우리 역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별 대중적 저항을 일으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마저 집단 의식 통제를 위하여 광범위한 세뇌 프로젝트를 더러 시작하기도 하는데 엘든 테일러는 그동안 미국 정부나 세계 곳곳에서 정부 주도로 행해져 온 각종 세뇌 프로그램들 역시 소개한다. 바로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광범위한 세뇌의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하여 엘든 테일러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의 생각이란게 나만이 생성하고 판단하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의 생각이란 많은 편견으로 얼룩져 있으며 그 대부분은 내가 아닌 남이 생성하고 판단하고 평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총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로 이것이 1부의 결론이다. 그렇게 무엇이 자신의 생각이고 남의 생각인지 알 수가 없으니 되도록 모든 가치 판단에 있어 나만의 생각이란 걸 고집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두고 근본부터 따져 차분히 생각하라는 것이 2부의 메세지다. 사실 나도 읽고나서야 알았지만 이 책은 1부와 2부가 이처럼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1부가 생각이란 게 많은 부분 외부로 부터 주입된 것이다에 대한 상세한 논의의 과정이라면 2부는 그러한 마음의 현실을 인정하고 되도록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 같은 것들이 나와 있는 자기개발서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해서 1부에선 흥미를 돋구며 신나게 읽었지만 2부에선 어쩐지 좀 맥이 풀려버린 느낌이었다.(사실 개인적으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 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에 정직한 모습을 대면할 계기를 준다는 것에서 이 책은 1부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있다. 나와는 달리 그런 장르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2부 역시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미디어의 범람, 광고의 범람, SNS의 범람 등등 내가 영향 받을 수 있고 혹은 나도 모르게 주입 받을 수 있는 정보들이 매일 쓰나미 처럼 우리 머리 위로 덮쳐 오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나만의 생각, 나만의 취향, 나만의 성격을 고집하기 보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외부에 의해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좀 더 나 아닌 것에 스스로를 열여가면서 그 부단한 ‘나’의 변화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의 조합으로서의 ‘나’를 만들어가는 게 오늘을 사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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